• 최종편집 2021-07-2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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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열열사의 일기장과 최루탄을 맞고 쓰러진 모습

행정안전부(장관 전해철) 국가기록원은 6월 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된 이한열 열사의 생애기록 38건을 복원하여 공개한다고 밝혔다.

이한열 열사는 1987년 당시 민주화 시위과정에서 전경이 쏜 최루탄을 맞고 사망하였고, 이를 계기로 6월 항쟁은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이번 복원된 기록은 이한열기념사업회에서 소장하고 있는 이한열 열사의 유품으로 고교생 시절의 기록과 압수‧수색 영장, 부검결과 등 87년 6월 당시 항쟁과 관련된 기록들이다.

 

특히, 17세(82년) 고교시절 겨울방학 기간에 쓴 50여 일간의 일기‘My Life’에는 학생으로서의 평범하고 소소한 일상뿐만 아니라, 삶과 세상에 대한 진지함과 깊은 생각 등이 잘 나타나 있다. 

 

▷나는 우리 선조들이 당한 수모를 이를 갈며 보았다...더욱더 힘을 길러 강국이 되어야 겠다는 굳은 결의가 나의 가슴을 스쳐갔다. 만일 대한제국이 무사히 지속되었더라면 지금쯤 우리나라는...역사속에 만일이란 있을 수 없다. (82.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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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세의 이 나이에 나는 과연 무엇을 남겼는가?...오늘은 한해를 보내는 기분이 다른때와는 전혀 다른 생각이 든다. 올해는 무엇보다도 정신적 바램이 컸던 해라고 본다. 나의 생각 나의 사상은 점점 어떤 확고한 가치관을 통해서 한발 한발 나아가는 듯한 기분이 든다. (82.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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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후에는 ‘도산사상’이란 책을 읽었다. 우리 민족의 선각자인 안창호 선생의 사상을 잠시나마 엿볼 수 있었다. ”성실“이란 두글자가 내 마음을 몹시 흥분하게 했다. ‘성은 하늘의 도리요, 성(誠)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인간의 도리라’그렇다. 인간은 모든 일에 완전할 수 없다. 인간의 참 모습은 최선을 다하는 것 그리고 또 한층 노력하는 것, 바로 그것이 우리들이다. (8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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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기록원은 기록물의 훼손 상태를 정밀진단해 클리닝과 오염제거, 결실부 보강, 중성화 처리를 통해 원형 그대로 복원했다고 밝혔다. 국가기록원 누리집에서 원문을 볼 수 있다. 향후 이한열기념사업회, e-뮤지엄에서도 공개된다.

 

<이한열 열사는?> (이한열 기념사업회 자료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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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년 대학교1년 MT가서 음식준비하는 이한열 열사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농협 직원이었고, 어머니는 가정주부였다. 누나 셋에 이어 태어난 첫 아들로 부모님의 사랑 듬뿍 받으나 응석꾸러기가 아닌, 순하고 조숙한 소년으로 성장했다. 

 

학업성적이 뛰어났으나 공부에만 매달리는 책상물림은 아니었다. 문학을 사랑해 많은 책을 읽고 시를 썼다. 그림도 썩 잘 그렸다. 재수를 해서 연세대 경영학과에 들어간 후 ‘사회’를 만난다. 광주민주항쟁을 알게 되고 괴로워했고, 군부독재와 민주주의의 탄압에 분노했다.

 

자신의 고민을 글과 그림으로 많이 남겼다. 만화 동아리 활동을 했고, 더러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행동하는 양심으로 부끄럽지 않게’ 살고자 했으나, 또한 섣부르게 나서는 대신 조심스럽고 진중했다. 솔직한 사람이었다. 때로 무력이 동원되는 시위가 두렵다고도 했다.


그래도 앞에 서야만 할 때는 용기와 의무감을 갖고 나섰다. 몸 상태가 안 좋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의무감 때문에 시위대 맨 앞줄에 나섰던 87년 6월 9일, 직선으로 날아온 최루탄이 그의 뒷머리를 때렸다. 

 

27일 간 사경을 헤맸다. 많은 이가 그로 인해 울었고, 그로 인해 거리로 나섰다. 그리고 그런 마음, 그런 움직임이 모여 그해 6월 29일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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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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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은

이한열열사님의나라사랑하는고민과의지가일기장에적혀있네요.
민주주의완성을위해깨어있는시민이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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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 이한열 “역사 속에 만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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